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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어디까지 가봤니? : 3편언뉴주얼트립 2025. 4. 19. 02:01반응형
여행이 계획대로 이루어진다면 기억에 남을 순간이 하나 적어지는 것이다.
구글리뷰를 따라 식당과 카페를 가게 되면 우리는 타인이 남긴 별점만큼만 그곳을 기억한다.
왜 이런 감성적인 문장을 쓰고 있는가 하면 우리는 예상치 못한 천재지변으로 흐바르 섬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오늘 11시 배로 섬을 떠나 시베닉으로 옮기려던 우리의 일정이 어제부터 좋지 않던 날씨가 오늘까지 지속되며 오전 배편들이 모두 결항되었다.
섬 세 곳에서 육지로 나가는 오전 배편은 모두 취소되었다.흐바르섬의 마지막날
육지에서 배가 뜨지 못하니 섬으로 들어오는 배도 없고 우리는 오도 가도 못한 신세가 되었다.
짐을 싸려 이른 아침 눈을 뜬 덕에 오늘 일어날 불운을 평소보다 일찍 알게 되었다.
오늘부터 묶기로 한 시베닉 숙소는 무려 1박에 280유로나 하는 비싸 호텔이라 하룻밤도 놓칠 수 없는 데다가 이 섬을 못 나가면 당장 머물 숙소도 문제고 스플리트 육지로 가서 한 시간을 차로 이동도 해야 하는데.
오만가지 걱정이 뱃멀미하듯 휘젓고 다닌다.스타리그라드 항구
흐바르 섬에서 육지로 향하는 배가 일 년에 다섯 번 있을까 말까 한 횟수로 결항을 한다고 한다.
우리는 그 다섯 번의 경우의 수에 당첨되어 언제 뜰지 모르는 스플리트행 배를 기다리기 위해 스타리드 그라드로 향하는 중이다.
오후 2시 반이 넘어서야 스플리트 배가 흐바르로 출발할 것이라는 희망적인 문구가 깜빡이는 선박 홈페이지에 의지한 채 폭풍우가 몰아치는 흐바르 그라드를 떠나 스타리그라드에 스타리그라드는 흐바르 섬을 횡단하는 고속도로 116을 따라 20여분 운전해 오면 도착한다.
해안도로의 절경은 강풍으로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고 재난 영화 속 주인공처럼 빠르게 도시를 빠져나왔다.
아름다움은 바다에 다 녹아 사라져 버린 것 같은 황망한 항구에는 오래 주차되어 녹이 슨 자동차 몇 대와 오후 5시 반 배를 기다리는 화물차 몇 대만이 덩그러니 세워져 있다.지루함을 견디지 못한 자 우리가 이곳에 주차를 한 시간은 12시.
항구 터미널 옆에 문 옆 유일한 식당은 성의 없이 휘갈겨 쓴 오늘의 메뉴와 인도인 서버와
스냅백 모자를 쓴 젊은 크로아티아인 주방장이 요리를 하는 간이식당뿐이었다.
햄 앤 치즈 토스트나 햄 앤 치즈 샌드위치나 크로아티아 식당이라서 구색을 맞춘 체바피
전통요리까지 국적을 넘어선 메뉴판을 보니 식욕까지 싹 달아난 기분이다.
아이는 햄 앤 샌드위치와 남편은 체바피 나는 물을 많이 넣은 에스프레소를 달라고 열심히 설명했다가
인도인 서버가 "아메리카노?"라고 한 번에 정리해 주어 겨우 주문할 수 있었던 커피 한 잔으로 아점을 해결했다.인근 건설현장 인부들과 배를 기다리는 트럭 운전사들이 연신 담배를 피워 대는 통에 곤욕스러웠지만 성의 없던 간판 글씨에 비해 맛있었던 음식에 한번 놀라고 말았다.
50년 전통 엄마밥집
‘여객선 터미널 앞 인도인이 서빙하는 식당에서 시킨 음식이 마치 50년 전통 백밥집 느낌이 났다.
체바피와 함께 나온 파프리카 소스와 투박하게 자른 양파를 빵에 넣어 한 입 삼키고
나도 모르게 나보다 젊어 보인 주방 청년에게 '엄마' 하며 손을 잡고 울부짖을 뻔했다.
외관만 보고 무시했던 나의 마음 사과하고 싶소.
밥을 먹고 선착장 근처에 있는 슈퍼마켓을 가고 바다에 돌도 몇 번 던지고 화장실도 몇 번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저 멀리 배가 보인다.
마치 무인도 갇혀 있다 구조된 심정이랄까.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며 살려달라고 할 뻔했다.
이번에 섬에 들어온 배는 들어올 때보다 서너 배는 더 큰 배가 왔다.
마치 크루즈 여객석처럼 생긴 모습 덕에 하루 종일 긴장했던 마음이 위로가 되었다.
극한의 상황을 겪고 나면 무엇이 소중한지 느끼게 된다.
우리는 예정된 일정을 하나도 하지 못했더라도 괜찮았다.
섬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했고 오늘 할 일은 다 했다. 그것뿐이다.
늦은 밤 크로아티아의 고속도로를 달리며 남편에게 말했다.
반딧불이처럼 빛나는 산속 마을의 빛을 보며 오늘 우리 배가 늦지 않았더라면 볼 수 없었을 크로아티의 밤 풍경이지 않았겠냐고.
깊은 어둠의 도로를 뚫고 우리는 시베닉으로 왔다.
오래된 항구 도시 시베닉에서는 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쉴 계획이다.
우리의 크로아티아 여행 하이라이트 숙소 고급 스몰 럭셔리 리조트에 4박을 보내고 다시 스플리트로 돌아간다.
내일 당장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우리는 더 계획하지 않기로 했다.
격렬하게 오늘만 잘 보내기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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